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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추억은 상당하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러 스튜디오 현장에 가기도 하고 리그 대회가 있는 날엔 꽤 멀리까지도 찾아가기도 했다. 추후에는 이때의 영향으로 게임 관련 아르바이트도 하고, 게임대회 이벤트 관련 일도 했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다양해서 스타 주종족도 제각기였는데, 난 저그유저라 저그 선수를 유독 응원했다. 홍진호 선수야 물론이거니와 저그 쌍둥이 형제 장진남 장진수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그리고 박경락 선수...

 

그때 그시절 모니터속 작은 유닛들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기하고 신이나던지. 친구들과 같이 PC 방에서 스타하면서 선수의 전략이나 컨트롤을 따라한답시고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임요환 선수, 홍진호 선수는 방송에서 간간히 보고, 김정민 선수는 예전부터 해설위원으로 자주 보면서 같이 나이 먹어가는 것을 느끼는데, 이번에 들려온 박경락 선수의 소식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과거 박경락 선수의 인터뷰 내용 중 기사 하나를 보았다. 그가 10대 시절부터 얼마나 진지하게 게임에 임해왔는지 말해주는 기사였다. 이루 글로 뭐라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E스포츠의 발전을 함께 해온 스타 유저로서, 스타 리그 팬으로서, 특히나 저그 유저 팬으로서, 참 안타깝다. 굳이 공개되지 않은 박경락 선수의 사망 원인이나 사망 이유를 알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e스포츠가 이만큼 발달하기까지는 몇몇 이름난 선수들만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계자, 해설위원, 캐스터, 수많은 팬, 그리고 무엇보다 진지한 자세로 젊은 청춘의 열정을 불사른 많은 선수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박경락 선수의 플레이가 있었음을.

 

예전 박경락 선수시절 프로필 가족관계란에 독고다이가 무슨 뜻인가 했는데, 외동아들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경락

생몰 1984년 9월 19일~ 2019년 7월 29일 

직업 전직 프로게이머

 

예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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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락] "게임으로 성공해 공부 못한 설움 풀겠다"

한때 지방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

2002년 월드사이버게임즈(WCG) ‘스타크래프트’ 국가 대항전에서 한웅렬과 한 팀이 되어 금메달을 획득한 프로게이머 박경락(19). 
WCG 개인전에서의 수상은 거두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당시 신인이던 그로서는 세계 게이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 됐다. 
작년 4월 한빛소프트 소속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박경락은 겜티비 스타리그 준우승을 거머쥐는 등 각 리그에서 무서운 저그돌풍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현재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 올라 맹활약 중이며, 이번 시즌이야말로 2회 연속 4강의 자리를 벗어나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최적의 순간이라며 각오를 다진다.

“공부는 적성에 안 맞으니 차라리 '게임' 할래요!”

어려서부터 외동아들로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분야는 오로지 ‘게임’뿐.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에게만은 관대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성적이나 공부에 대해 강요하지도 꾸짖지도 않으셨다. 

고등학생이 된 박경락은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다. 그 재미에 푹 빠져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고 잦은 지각도 모자라 아예 무단결석까지 해가며 PC방에서 생활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과 어머니가 PC방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께 공부를 포기하고 게임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수차례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고, 박경락의 고집에 결국 부모님도 선생님도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고1때 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공부도 게임도 ‘성적순’

막상 게임으로 성공하겠다며 큰소릴 쳤지만 PC방에서 마음놓고 연습을 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우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다. 과다한 PC방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어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고 마음놓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대구’든 ‘전주’든 상관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땐 잠자리가 없어 밤새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 모르게 어머니에게 얼마씩을 용돈으로 받아 생활을 유지했지만 집을 떠나있는 동안을 줄곧 허기진 생활을 해야했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씩 자퇴한 걸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프로게이머’가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학교나 게임 판이나 모두 성적으로 순위를 매긴다. 박경석은 공부로는 늘 바닥을 떠돌지만 게임에 있어서 만은 얼마든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고 그만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게 ‘게임’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어머니! 그 동안 속썩여 죄송해요!"

 

그의 주 전략은 ‘게릴라 전술’이다. 테란에는 히드라 럴커 중심으로,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는 무탈 리스크 게릴라 전술로 대응한다. 그의 독특한 게릴라 전법은 프로게이머 사이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플레이로 팬들은 '경락마사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경기에 임할 때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상대 전술을 파악하고 이에 맞서 게릴라 전술을 생각해낸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생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날엔 어김없이 패배하고 만다. 

박경락은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도 가슴 아린 짝사랑의 추억도 없다. 초등학교 때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것 이외에 딱히 취미나 특기도 없다. 그가 오직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아 부는 것은 ‘게임’ 뿐이다. 

박경락은 ‘그래도 고등학교만은 졸업해라’시던 부모님의 뜻을 져버린 데 대해 늘 죄송스럽다. 특히 아버지 몰래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 마음 아프게 하면서까지 그렇게 원하던 프로게이머가 됐으니깐 앞으로 게임에만 전념할 겁니다. 성공하겠다고 큰소리 쳤으니 이젠 좋은 경기 치러서 돈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만 남았어요.”